'대숲 아래서'는 19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작이자 첫 시집의 제호이기도 하다.
나태주 시인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작품임은 물론, 38년이 흐른 지금 다시 읽어도 오늘의 정서와 멀지 않은 명시다. 20대 중반에 쓴 이 시를 심사위원 박목월, 박남수 두 시인은 이렇게 평하고 있다.
"오늘날 현대시의 혼탁한 번역조 시풍의 풍미와 생경한 관념적 무잡성, 응결력이 약화된 장황한 장시의 유행 속에서 시류에 초연하여 잃어져가는 서정의 회복을 꾀하고 시의 본도를 지켜 침착하고 자기의 세계를 신념하는 그의 작품이 오늘날 우리 시단의 반성적인 계기가 되리라는 뜻에서 과감하게 당선작으로 밀어본다."
그의 시는 한결같다. 대숲의 풍경을 통해 그리움의 정서를 차분하게 그려내는 솜씨, 자연의 품 안에서 위로와 새로운 깨달음을 얻고 조용히 자신의 삶 자리를 성찰해 보는 넉넉한 정신적 여유, 최근 한국시인협회상 수상시집 '눈부신 속살' 에서도 그 흐름은 큰 물줄기로 읽혀진다.
'모두가 내것 만은 아닌 가을'로 시의 4편을 열고 시인은 다시 '모두가 내것만은 아닌 것도 아닌/ 이 가을'로 시상의 흐름을 바꾼다. 부정을 통한 대긍정의 반전이라고나 할까. '그렇지 않다'고 부정해놓고 다시 생각해 보니 '그렇다'고 느껴지는 순간, 그것은 하나의 깨달음이다. 그렇다, 세상에 내것이라고 할만한 것이 어디 있는가. 시인은 '달님만이 내 차지다' 라고 시를 끝맺지만 그것은 '내것'이란 '소유'의 개념이 아니라, 대자연 속에 내가 일부로 존재한다는 상생, 공존의 의미, 또는 자족과 순응의 공간을 말하려는 것이리라.
어느 작가는 '글은 몸 속의 리듬을 언어로 표현해내는 악보'라고 했다. 나태주 시인은 지금 어머니의 땅 고향이 물려준 것들을 몸 속에서 꺼내 악보로 옮겨놓듯 시를 쓰고 있다. 매일매일 노래하듯이 시를 쏟아내고 있다. 그의 시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고향, 어머니의 정서를 되찾아 내는 계기를 마련했으면 한다.
황토 내음 번지는 시어들, 이를테면 '등피', '밤소나기소리', '사운대다 가는 밤바람소리', '실비단 안개'가 주는 환기력이 메마른, 상처투성이의 마음을 치유해 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태 전 죽음의 고비를 딛고 새 생명을 찾은 시인이 지금 왕성한 생명력으로 삶의 소중함과 살아있는 것들에 대한 연민과 사랑과 축복을 시로 노래하고 있듯이.
이명수<시인·충남시인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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