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8-02

좋은 시 모음




꿈꾸는 물 - 한광구

비 오시는 소리 들린다.
꿈이 마르는 나이라서 잠귀도 엷어진다.
아, 푸욱 잠들고 싶다.
한 사나흘 푸욱 젖어 살고 싶다.



밥알 - 이재무

갓 지어낼 적엔
서로가 서로에게
끈적이던 사랑이더니
평등이더니
찬밥 되어 물에 말리니
서로 흩어져 끈기도 잃고
제 몸만 불리는구나


달 - 김용택

앞산에다 대고 큰 소리로,
이 세상에서 제일 큰 소리로
당신이 보고 싶다고 외칩니다
그랬더니
둥근 달이 떠올라 왔어요



그리운 마음 - 이기철

바람은 불어 불어 청산을 가고
냇물은 흘러 흘러 천리를 가네
냇물따라 가고 싶은 나의 마음은
추억의 꽃잎을 따며 가는 내 마음
아 엷은 손수건에 얼룩이 지고
찌드른 내마음을 옷깃에 감추고 가는 삼월
그 발길마다 밟히는 너의 그림자


아침 - 천상병

아침은 매우 기분 좋다
오늘은 시작되고
출발은 이제부터다
세수를 하고 나면
내 할 일을 시작하고
나는 책을 더듬는다
오늘은 복이 있을지어다
좋은 하늘에서
즐거운 소식이 있기를



꽃지는 저녁 - 정호승

꽃이 진다고 아예 다 지나
꽃이 진다고 전화도 없나
꽃이 져도 나는 너를 잊은 적 없다
지는 꽃의 마음을 아는 이가
꽃이 진다고 저만 외롭나
꽃이 져도 나는 너를 잊은 적 없다
꽃지는 저녁에는 배도 고파라



사랑쌓기 - 윤보영

그리움을 허물다 돌아 보니
더 많은 그리움만 쌓여 있군요
내가 정말
그대를 사랑 하고 있나 봅니다



반성 16 - 김영승

술에 취하여
나는 수첩에다가 뭐라고 써 놓았다.
술이 깨니까
나는 그 글씨를 알아볼 수가 없었다.
세 병쯤 소주를 마시니까
다시는 술마시지 말자
고 써 있는 그 글씨가 보였다



그리움 - 정지원

하루 종일 굶다가 늦은 밤 돌아와
허겁지겁 밀어넣는 찬밥덕이처럼
막상 마주하면 목이 메이는 사람



그리움 - 유치환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임은 물같이 까딱 않는데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날 어쩌란 말이냐



여름방 - 김달진

긴 여름날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앉아
바람을 방에 안아들고
녹음을 불러들이고
머리 위에 한조각 구름 떠있는
저 불암산(佛岩山)마저 맞아들인다.


여름에는 저녁을 - 오규원

여름에는 저녁을
마당에서 먹는다
초저녁에도
환한 달빛
마당 위에는 멍석
멍석 위에는
환한 달빛
달빛을 깔고
저녁을 먹는다

마을도
달빛에 잠기고
밥상도
달빛에 잠기고
여름에는 저녁을
마당에서 먹는다
밥그릇 안에까지
가득 차는 달빛
아!달빛을 먹는다



남해 금산 - 이성복

한 여자 돌 속에 묻혀 있었네
그 여자 사랑에 나도 돌 속에 들어갔네
어느 여름 비 많이 오고
그 여자 울면서 돌 속에서 떠나갔네
떠나가는 그 여자 해와 달이 끌어주었네
남해 금산 푸른 하늘가에 나 혼자 있네
남해 금산 푸른 바닷물 속에 나 혼자 잠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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