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봉우리 위에는
고요가 있고,
모든 나무 우듬지에서
그대는 느끼지 못하네.
한줄기 숨결조차도;
작은 새들은 숲 속에서 잠잠하네.
기다려라, 머지않아
그대 또한 고요해지리니.
- 요한 볼프강 폰 괴테 - (서울대 전영애 교수 번역)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는 우리에게 너무나도 친숙한 독일의 소설가이다. 우선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작가로, 가곡 「들장미」의 작사자로 기억된다. 나아가 소설 『빌헬름 마이스터』나 『파우스트』로 유명하다. 누구나 풍문처럼 들은 바 있을 것이다. 그가 한 때 독일의 바이마르공화국의 재상이었다고. 그러나 그가 탁월한 자연과학자요 철학자요 또한 개성 있는 화가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것은 또 내가 병원생활 하던 때의 일이다. 서울아산병원에서 환자로 엎드려 살 때, 2007년 7월쯤. 몸의 상태가 조금 호전되기 시작하여 나는 아내에게 책을 한 권 사달라고 부탁했다. 병원의 지하층에 여러 가지 편의시설과 함께 조그만 서점이 있었는데 거기에 내가 평소 읽고 싶던 책이 한권 꽂혀 있었던 것이다. 괴테가 지은 『이탈리아 여행』이란 책.
그 책을 읽으며 짐짓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그런 괴테가 아니었다. 그는 아주 해박한 지식을 자랑하는 지질학자였고 문화평론가였고 역사학자였고 또 화가였다. 하, 이럴 수가! 도대체가 그는 종잡을 수 없는 인물이었다. 전인(全人)이라 그럴까? 그림이 놀라웠다. 여행을 하면서 바쁘게 빠르게 속필로 스케치한 것도 있고 자세하게 그린 그림도 있고 또 인물화도 있었다. 영국 사람들은 섹스피어와 인도와 바꾸지 않는다고 말했다지만 독일 사람들은 괴테와 그 무엇과 또 바꾸지 않겠다고 말하겠구나 싶었다. 괴테를 낳은 독일이란 나라가 부럽다는 생각을 잠시 갖기도 했다.
위의 작품은 괴테의 많은 작품 가운데 젊은 시절 이래 내가 무던히도 좋아한 시이다. 고달픈 삶의 고비마다 이 시한테서 그 어떠한 위로 같은 것은 받지 않았나 싶다. 그렇다. 이 시 속에는 고달픈 한 사람이 또 한 사람 고달픈 사람에게 들려주는 위로의 메시지 같은 것이 들어있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시인의 나이 31세 때(1780년 9월 6일), 일메나우의 키켈한이라는 작은 산장에서 자면서 이 시를 벽에 적었는데 세월이 흘러 51년 뒤의 어느 날(그날이 그의 생일날인 1831년 8월 28일) 바로 그 장소에 와 아직도 벽에 남아 있는 글을 읽으며 감격하여 눈물을 지었다는 일화가 있다. 그런 뒤 시인은 1년도 못 되어(1832년 3월 22일) 세상을 뜨고 만다. 시인의 나이 83세.
“오늘 나는 처음으로 인간다운 인간 하나를 만났다.” 이것은 나폴레옹이 괴테를 처음 상면하고 남긴 말이라 한다. ‘영원히 여성적인 것은 우리를 끌어올린다.’ 이것은 또 『파우스트』의 마지막 부분에 적은 괴테 자신의 말이다.
-나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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