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7-06

흰 구름 - 헤르만 헤세


오, 보아라. 잊어버린, 아름다운 노래의
나직한 멜로디처럼
구름은 다시
푸른 하늘 멀리로 떠서 간다.
긴 여로에서 방랑의
기쁨과 슬픔을 모두
스스로 체험하지 못한 사람은
구름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해나 바다나 바람과 같은
하아얀 것, 정처 없는 것들을 나는 사랑한다.
고향이 없는 사람에게는 그것이
누이들이며 천사이기 때문에.

‘흰구름’이란 말은 내가 매우 좋아하는 말 가운데 하나이다. 흰구름이란 말은 듣기만 해도 가슴이 부풀어 오르게 하는 말이다. 머언 하늘과 산마루가 떠오른다. 거기, 아지 못할 꽃의 그림이 보이고 미지의 한 소녀의 얼굴이 그려지기도 한다. 야튼, 흰구름이란 말은 사람의 마음을 멀리까지 데리고 가는 말이다. 매우 사랑스런 말이고 영혼의 울림이 들어있는 말이다. 가끔 혼자서 중얼거리기도 한다. 한국말로 시 쓰는 사람으로 흰구름이란 말을 나만큼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또 있을까?

계절로 보아 늦은 여름철, 하루로 보아서는 오후 시간대. 하늘에 높이높이 피어오르는 것이 흰구름이다. 마치 누군가의 욕망인양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새하얀 솜덩이. 그대 비록 복잡하고 따분한 세상일에 잠겨 있는 사람일지라도 고개를 들어 하늘을 한번 바라보시라. 거기 문득 피어오르기 시작하는 흰구름을 보게 된다면 그대의 세상은 금세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세상으로 바뀌고 말 것이다. 하늘이 지어놓은 흰구름 궁전을 우러르며 지상에는 없는 어느 먼 왕조의 흥망성쇠를 거기서 발견하게 될 것이다.

헤르만 헤세(1877-1962)는 젊은 시절 무던히 좋아했던 외국 시인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 이름 자체가 참 아름다운 시와 같은 울림을 가졌다. 한국 사람들치고 헤르만 헤세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독일의 시인이며 소설가. 그리고 화가. 독일 출생이면서 스위스 국적을 가지고 나치 독일과도 맞섰던 사람.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무엇보다도 성장소설 『데미안』의 작가. 『수레바퀴 밑에서』『싯사르타』『황야의 늑대』『나르치스 골드문트』같은 많은 작품 가운데 『유리알 유희』는 노벨문학상 수상작품이다.

내가 헤세를 처음 알게 된 것은 박목월 선생의 책을 읽음으로서다. 박목월 선생도 무던히 헤세를 좋아해 당신의 책 속에 자주 인용하곤 했던 것이다. 위의 시 속에 나오는 사람은 낯설고 먼 땅을 홀로 떠도는 한 사람이다. 그는 하늘에 외로이 떠 있는 흰구름을 보면서 누이를 생각하고 있고 천사를 그리워하고 있다.

‘긴 여로에서 방랑의/기쁨과 슬픔을 모두/스스로 체험하지 못한 사람은/ 구름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얼마나 오묘한 삶의 깨달음인가!

나는 지금도 헤르만 헤세가 글을 쓰고 그림 그린 『방랑』이란 조그만 책을 가끔씩 꺼내어 그리운 마음으로 읽는 사람이다.
- 나태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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